조경과구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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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華嚴寺)**는 지리산 기슭에 있는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역사·전설·설화·전통·역대 인물이 매우 풍부합니다. 어르신들 모시고 들러 설명드리면 좋을 내용들을 정리해드릴게요.
🌸 구례 화엄사 정리
1. 역사
창건 : 신라 **연기조사(緣起祖師)**가 544년(신라 성왕 22년)에 창건.
중창 : 7세기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머물며 화엄학을 연구·전파.
전성기 : 통일신라~고려 시대,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크게 번창.
조선시대 :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중건.
현대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산내암자 8곳을 두고 있음.
2. 전설·설화
연기조사의 창건 설화
지리산에서 수행하던 연기조사가 보살의 계시를 받아 절터를 정했다고 전함.
화엄경의 기적
화엄사에서 화엄경을 독송하던 스님이 용의 가피를 받아 병이 나았다는 설화.
천불전의 전설
천불전에는 천 개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예전에 절에 큰 화재가 났을 때
부처님이 스스로 몸을 피워 법당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함.
화엄사 매화 전설
화엄사 경내에 있던 매화나무는 “향기가 천리 밖까지 퍼졌다” 하여 천리향 매화라 불렸는데, 고려 말 왜구가 침입했을 때 뿌리째 뽑혔다는 전설.
3. 전통·문화유산
국보
국보 제67호 : 각황전(大雄寶殿과 더불어 한국 최대 목조건축물)
국보 제301호 :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보물
화엄사 동·서 오층석탑, 석등,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등 다수
불교 전통
화엄사에는 화엄학 연구 전통이 깊어, 고려시대에는 화엄학승들이 집결.
조선 후기에는 승병 본거지로도 활동.
4. 역대 인물
연기조사(緣起祖師) : 창건주, 인도에서 화엄경을 전한 것으로 전해짐.
의상대사(義湘, 625~702) : 화엄종의 초조, 화엄사에서 화엄사상을 정립.
원효대사(617~686) : 화엄사에 머물며 교학 연구, 후에 의상과 함께 화엄 사상 발전.
서산대사(1520~1604) :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며 화엄사와 깊은 연관.
청허휴정, 처영대사 등 임진왜란 승병장들도 화엄사와 관계.
근현대에는 화엄학승 운허 스님 등이 화엄사의 맥을 이어옴.
5. 의의
한국 불교 화엄사상의 중심지
지리산 신앙과 불교문화의 융합지
전통 건축·조각·불교 예술의
구례 화엄사에 대한 역사, 전설, 설화, 전통, 그리고 역대 인물에 대해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역사
창건 및 초기: 화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절의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온 것입니다. 643년(선덕여왕 12년)에는 자장법사가 증축하고 석존사리탑 등을 조성했으며,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는 도선국사가 다시 증축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화엄종을 크게 일으키면서 화엄사는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상은 화엄사에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고, 그 내벽에 《화엄경》 80권을 석판에 새겨 보관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석경 파편은 현재도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일부 보관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 고려 태조 왕건은 도선국사의 유지를 받들어 화엄사를 고려 최초의 중수 사찰로 지정했으며, 이후 광종, 문종, 인종, 충숙왕 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임진왜란과 재건: 임진왜란 당시 화엄사 승려들이 의병으로 참전하여 왜군에 맞서 싸우면서, 화엄사는 왜군의 공격으로 모든 전각이 불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인조 8년(1630년)부터 7년간 벽암선사가 재건을 주도하여 대웅전, 각황전, 보제루 등을 복구했습니다. 이때 재건된 건물들이 현재 화엄사의 주요 전각들입니다. 숙종 27년(1701년)에는 화엄사가 선교 양종의 대가람으로 지정되었습니다.